‘폴링 스타 챌린지’라는 사진 놀이가 있다. 고급 승용차나 전용기에서 일부러 넘어지는 상황을 연출한 뒤 가방 속에서 쏟아진 자신의 명품을 자랑하는 사진이다. 이런 셀프 포트레이트를 SNS에 올려 자신의 부를 과시한다. 이 놀이는 러시아 출신 모델 나타샤 폴리가 지난 7월, 전용기에서 내리다가 트랩에서 넘어진 듯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시작됐다. 이에 러시아와 동유럽 유명인들이 패러디를 쏟아내며 급기야 중국으로 넘어가 폭발적인 현상이 되었다. 중국 저장성 타이저우의 ‘왕훙(인터넷 스타)’으로 불리는 한 여성이 횡단보도에서 넘어지며 명품 하이힐· 지갑·화장품 등을 바닥에 쏟은 사진을 올렸다. 이 여성은 차량 정체 유발 등 교통법 위반으로 100위안(약 1만6400원) 벌금형을 받아 화제가 되었다. 수많은 중국인이 이것을 따라 하면서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 세계적인 명차들이 동원됐고 수많은 명품이 바닥에 쏟아졌다. 물론 이런 사진이 확산된 것은 말할 나위 없이 스마트폰과 그것에 장착된 카메라 덕분이다. 이제 스마트폰 카메라는 우리 일상의 이미지 언어가 되었다.
사실 수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 카메라로 진지하게 사진을 찍을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150만원짜리 아이폰이든 20만원짜리 샤오미든, 카메라의 성능이 일취월장해 또 하나의 독립 카메라로서 구실을 한다. 해상도를 뜻하는 사진 크기는 물론이고 다양한 디지털 효과와 정보가 함께 수록된다. 이것이 스마트폰에 내장된 다양한 앱과 조합되어 무시무시하게 증폭되는 가상세계까지 구축할 수 있다. 덕분에 카메라 시장에서는 ‘똑딱이’라 불리던 렌즈 고정형 소형 카메라가 퇴출되고 말았다. 이런 현실 속에도 쉬 느끼지 못하는 사실이 있다. 바로 우리 모두가 카메라를 소유했다는 것. 카메라 소유자의 비율은 30년 전 필름 시절에 인구의 1%, 20년 전 디지털 카메라의 출현으로 10%, 현재 스마트폰으로 95%쯤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 즉 이제 인간의 입이나 볼펜쯤으로 취급될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누구나 소유한 것이다.
“아우라(Aura)는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의 시대에 위축된다. 대신 복제 기술은 수용자로 하여금 그때그때의 개별적 상황 속에서 복제품을 쉽게 접하게 함으로써 그 복제품을 현재화한다.” 1940년대 발터 베냐민은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아우라가 제거된 사진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즉 아우라가 사라진 예술작품인 (대량 복제) 사진이 사회 민주화에 기여할 최고의 도구가 될 것이라 예견한 셈이다. 당시 카메라 한 대 가격이 노동자 1년치 월급 정도인데도 대중에게 급속히 확산되는 현상을 간파한 것이다. 그리고 예견대로 사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강력하고 확산력이 높은 미디어로 확인되었다.
언어 이상의 언어로 우리를 해석하는 사진
폴링 스타 챌린지도 이런 의미에서 아우라 없는 사진의 대중 파급력을 확인할 수 있는 현상이다. 이제 사진에는 각자의 욕망이 탑재되어 언어 이상의 언어로 우리를 해석하고 내보인다. 중국의 폴링 스타 챌린지도 부의 과시로만 끝났다면 그리 재미있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챌린지에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면서 그 소재가 ‘생활 밀착형’으로 바뀌고, 또 다른 언어를 생산하고 있다. 즉 마을버스에서 넘어진 한 허름한 주부의 장바구니에서 쏟아진 저녁거리들은 서민들의 애잔함과 동시에 빈부격차에 대한 사회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녀도 사실 부자들 못지않은 성능의 스마트폰을 가졌고, 이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사회적인 목소리를 낸 것이다. 카메라는 진화한다. 한때 사진가들의 전유물이었던 카메라가 대중의 손에 들어간 이상 폭발적인 돌연변이를 겪을 터이다. 그렇게 사진은 또 한 번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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